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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황소와 줄다리기를 시작으로 시청자들을 찾았던 무한도전은 대한민국 예능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음과 동시에 리얼버라이어티의 기준으로 자리잡았다. 그들이 표방하던 '대한민국 평균 이하', '국내 최초 리얼버라이어티', '예능계의 3D' 는 추후 큰 성공과 더불어 그 의미가 무색하게 되었지만 그에 대한 시발점이라는 것에서 존재의 의의 또한 깊다 할 수 있다.
특정 주제를 정하지 않고 어떤 것이든 '도전' 한다는 불특정 컨셉은 하나의 컨셉으로 일괄하던 당시 예능계에서 그들의 제목과 같이 무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그런 주제의 불특정이야 말로 장수할 수 있는 발판이었고 시청자나 출연자에게 쉽사리 지겨움을 느끼지 못하게하는 요소였다.
물론 무한도전의 성공은 프로그램의 포멧에만 있는건 아니다. 뭐든 성공하는 것이 응당 그렇 듯 각 맴버들의 역량, PD 및 연출진의 능력, 방송국의 전폭적인 지지, 프로그램을 사랑한 시청자들 등의 복합적인 요소가 잘 어우러지면서 무한도전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무한도전은 청소년들이 커가면서 스토리를 풀어내는 성장 드라마같다는 생각도 한다. 각 맴버들의 예능적 발전은 프로그램이 방송했던 세월만큼이나 눈에 보이게 성장하는게 보였다.
초창기 김태호PD가 다 망해가던 무한도전을 본격적으로 맡으면서 처음 시작했던건 맴버들의 '순발력 기르기' 였다(PD는 처음부터 그들을 조련했다). 프로그램 제목과 컨셉이 '무한도전' 이기 때문에 매주 뭔가 도전해야 하는 운명(?)임에도 불구하고 김태호PD는 '거꾸로 말해요. 아하!' 게임을 하면서 맴버들을 훈련시켰다. 그게 의도적인것이든 아니든 각 맴버들의 순발력과 말주변이 늘어간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그 때야 말로 무한도전의 암흑기였다. 하하가 종종 언급했던 시청률 4% 나오던 시절이 바로 아하 게임만 죽창하던 그 시절이었다. 사실 무모한도전, 무리한도전에 이어서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거꾸로 말해요 아하! 하던 시기), 온전한 무한도전(프로그램이 독립하면서 무한도전이 하나의 방송 프로그램이 된다)으로 무한도전을 구분해본다고 하면 내 생각에는 무리한도전 시절이 가장 암흑기였다.
무리한도전 당시 많은 맴버 충원이 이뤄졌으며 스케일도 조금 커지긴 했지만 사람이 많아 난잡하고 그 숫자에 비해 주목받는 맴버와 소외되는 맴버가 극명하게 갈리는 등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토요일 주말 예능이라고하면 방송국 입장에서 그리 메리트있는 시간대가 아니다. 아무래도 주말 저녁이다보니까 TV앞에 있기가 쉽지 않은 시간대이고 MBC 입장에서 봐도 시청률 잘 나오는 일요일 저녁 예능(당시 일밤)이 방송국의 간판 예능이었기 때문에 토요일 저녁 예능은 버리는 카드였다. 하지만 그 버리는 카드였기 때문에 시청률 4% 나오면서도 유지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계속 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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